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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학살 현장의 피아노 소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는 독일군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 안 곳곳에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다른 방에서는 한 독일군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J S 바흐의 ‘영국 모음곡’ 제2번의 ‘전주곡’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독일군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 밖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살육과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건조한 얼굴로 피아노를 친다. 이 음악에 맞추어 유대인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이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은 처절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무심하고 냉정하기만 하다. 서늘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독일군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드는 장면이 또 있을까.   바흐의 음악은 견고한 구성과 형식미를 자랑하는 장엄한 건축물과 같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음을 구축해 나간다. 바흐의 건반음악 악보에는 셈 여림과 같은 다이내믹을 표시하는 기호가 없는데, 이는 당시 건반 악기인 하프시코드에 이런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흐의 건반 음악은 객관적이다. 그리고 이런 객관성이 후대에 무수한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주었다. 오늘날 바흐의 건반 음악은 다이내믹의 표현이 가능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곡이라도 건조하게 칠 수도 있고, 따뜻하게 칠 수도 있다.   독일군의 바흐 연주는 건조하기 그지없다. 바로크 시대 본연의 차가운 객관성을 보여준다. 일정한 음형의 연속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음악. 바로 옆에서 수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데, 바흐의 음악은 애절한 멜로디 하나 없이 형식과 구성의 논리로만 전개된다. 그 무심함이 처절한 비명보다 더 끔찍하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피아노 학살 피아노 소리 건반음악 악보 바흐 연주

2024-01-29

[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한여름 밤, 꿈을 꾸다

카메라는 무대 위에서 연주를 펼치는 예술가의 손과 얼굴을 반복적으로 클로즈업했다. 건반을 어루만지는 손가락들이 곡을 완성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연주자와 하나가 됐다. 거기에 연주자의 코끝에 걸린 땀방울까지. 그야말로 영혼을 담아 연주하는 임윤찬의 연주에 할리우드 보울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의 관객은 매료됐다. 일부 관객들은 임윤찬의 피아노 소리가 발산하는 에너지에 동화돼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임윤찬은 2022년에 진행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준결승에서 테크닉적으로 굉장히 어렵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연주했다. 결승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소화해 1위에 해당하는 금메달과 2개 부문 특별상(청중상, 신작 최고연주상)을 수상했다. 당시 18살로 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이다. 지난 1일 할리우드 보울에서 임윤찬은 LA필하모닉과 협연을 하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관객들의 끝없는 박수와 환호에 임윤찬은 쇼팽의 ‘이별의 노래’로 화답했다. 임윤찬의 환상적인 연주가 펼쳐진 할리우드 보울의 무대 아치 위 하늘에는 달이 떴다. 그달은 흔치 않은 수퍼 문이었다. 달도 임윤찬의 연주를 듣기 위해 지구에 더 가까이 다가왔을까.   임윤찬이 커튼콜로 연주한 '이별의 노래’는 중앙일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URL : youtube.com/watch?v=bnksal9968A 김상진 사진부장 kim.sangjin@koreadaily.com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한여름 할리우드 보울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리

2023-08-04

[이 작품과 만났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임윤찬 군

지난 10일, “내일 연주도 티켓이 없다면서…?” 하는 공연장 바깥사람들의 안타까운 토로를 들으며 들어갔던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뉴욕 필하모닉과 임윤찬 군의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면서 그렇게 숨도 안 쉬듯 몰입된 청중들의 뒷모습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조차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부러 뉴욕에 왔다는 사람들까지, 홀 전체가 미동도 없이 그의 피아노 소리에만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초인적으로 드라마틱한 곡 자체의 매력까지 합해져, 40분이 마치 4분인 듯 지나가 버리고, 혼연일체가 되어 우레와 같이 쏟아져나오는 기립 박수 안에 나도 망연자실한 채 서 있던시간!! 그가 이룬 절정은 ‘감격’이라는 단어로는 심히 표현 부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 맨해튼 거리를 달리면서 임윤찬 군의 범세계적인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느 인터뷰를 보든, 19세 소년에 불과한데도 이미 완성된 듯 베어져 나오는 겸손한 인품.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잘 치기 위해, 쉽지 않은 단테의 ‘신곡’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읽었고, 등하굣길에 무려 1000번 이상을 들었다는 오늘의 3번 협주곡 등의 일화가 말해주듯, 그 곡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를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충실함. 그리고는 스스로 그 속에 빠져들어 듣는 이마저 몰입하게 하는 흉내 낼 수 없는 열정!!   어정쩡한 차원의 완성도에 서성이며 끊임없이 원치 않는 타협을 생각해야 하는 안타까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아예 머~얼리 떨어져 있는 그의 세계가 너무 부러워서가 아닐까.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을 알고 난 후 진정으로 좋아해서, 그곳에 몰입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나 엄청난 세계, 자신도 행복하기 그지없고, 듣는 이들도 감동에 전율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존 인물 이라서가 아닐까. 사람들 가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꿈을 그가 절절하게 실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잘 살고 있나를 반성하게 해주는 그에게 무한 감사가 보내진다. 내내 건강한 연주자로, 시작과 같이 끝내 담대한 전설로 오래오래 남기를 진정으로 기원해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전설적인 무대를 남겼던 실존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곳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Shine’에서 이 곡을 들으면서부터 좋아하게 되었고 마침내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한 명이 라흐마니노프임에도, 곡 제목이 2번인지 3번인지 늘 헷갈렸던 우매함이 이번 공연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3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찬 군은 스승인 손민수 교수가 보스턴 소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옮김에 따라, 가을학기부터 그곳에 유학하기로 했다고 한다. 뉴욕 가까이 오게 된 그가 더 많은 시간을 뉴요커와 함께해줄 수 있을 듯하여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 뉴욕필과의 공연에 숨은 조력자가 계시니, 윤찬 군이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함에 따라, 3년 동안 우승자 콘서트 협찬을 받아 뉴욕필과 협연하게 되었지만, 이 연주회를 후원한 유일한 한인, 미숙 두리틀 님의 조용한 후원에도 큰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린다. 나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음악을 듣는 이도 행복하게 해주는 그 일을 ‘실천하심’이 쉬운 일은 아님을 잘 아는 까닭이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났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리

2023-05-18

[문장으로 읽는 책] 피아노 이야기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피아노를 마스터하려면 우주를 마스터해야 한다. 피아노 소리의 스펙트럼은 마치 모든 음악적 및 비음악적 소리를 걸러내는 프리즘 구실을 한다. 휘파람 소리, 긁는 소리, 송아지 울음소리, 쓰다듬는 소리, 쾅 치는 소리, 올빼미 울음소리, 달콤하고 씁쓸하게 뜯는 소리 등 다른 악기들이 내는 온갖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양이 낑낑거리는 소리, 노새 울음소리, 샴페인 코르크 마개가 펑 터지는 소리, 짝사랑의 한숨 소리 등 모든 소리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이 카멜레온의 손안에 있다.   러셀 셔먼 『피아노 이야기』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넋을 잃은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 독사, 수증기,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거장, ‘건반 위의 철학자’ 러셀 셔면의 음악 에세이집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낸 교육가로도 유명한 그가 피아노 연주, 음악과 교육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펼쳐 보인다. “음악은 형식을 파괴하는 질문과 형식을 지키는 대답의 연속이다.” “기술은 뮤즈를 섬기도록 명령을 받은 상상의 시종이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베토벤을 섬겨야 한다. 아니, 베토벤을 대신해야 한다. 아니, 베토벤이 되어야 한다.” 소문난 야구광인 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 외야수 레니 딕스트라의 타격 스타일을 피아니스트의 모범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양성희 / 논설위원문장으로 읽는 책 피아노 이야기 피아노 소리 피아노 이야기 비음악적 소리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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